인간은 사회적인 존재다. 때문에 좋든 싫든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우리는 이러한 관계 속에서 즐거움과 위안을 얻는다. 하지만 동시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러한 스트레스를 잘 극복하는 반면, 필요 이상으로 괴로워하거나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타인과의 관계 맺기를 피하는 사람도 있다.
난 인간관계에 대해 크게 문제를 느끼고 있지 않는 편이지만, 나와 내 관계에 대해 돌아보고 더 나은 관계를 위해 개선해야할 것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처음으로 심리학 책을 펼쳐 들었다.
"바운더리"
이 책에서 사용하는 개념으로,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자아와 대상과의 경제이자 통로를 말한다. 바운더리는 자신을 보호할 만큼 충분히 튼튼하되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 친밀하게 교류할 수 있을 만큼 개방적이어야 한다.
사람에겐 저마다의 '바운더리'가 있다.
누군가와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상대를 '남'이 아니라 나의 일부처럼 여기는 습성이 있다. 사람의 자아에도 바운더리가 있다. 누군가와 가까워질수록 바운더리는 흐트러진다. 다시 말해 나의 경계가 일부 허물어지면서 '우리'라는 교집합이 만들어진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났지만 같은 관심사를 발견하고,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추억을 공유하고, 더 나아가 상대의 고통과 기쁨의 일부를 나의 고통과 기쁨으로 느끼게 된다. 친밀함이란 이렇게 '나'와 '너'가 만나 그사이에 '우리'라는 공유 영역을 만드는 것이다.
공유 영역은 나와 너의 바운더리가 일부 허물어지면서 생겨난 곳으로 어느 한 사람의 영역이라고 할 수 없다.
바운더리가 너무 희미(자아의 미분화)하거나 경직(자아의 과분화)되어 있다면?
바운더리의 경계가 모호하면 자기 세계가 약하고 외부에 휩쓸리기 쉽다. 동의 없이 아무나 내 삶에 개입하도록 내버려두는 것도 문제이지만, 반대로 다른 사람의 삶에도 지나치게 관여하기 쉽다.
반대로 바운더리가 경직되어 있다면 교류가 좀처럼 일어나지 않고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지내게 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들은 '나'밖에 모르고 자기 생각과 느낌에 매몰되어 있어서 방어적이거나 자기 주장만 내세우기 때문에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도 별다른 교류가 일어나지 않는다.
영양실조와 비만이 모두 병이듯, 관계의 건강함 역시 늘 양면성을 살펴야 한다. 자기 보호를 하지 못해 상대에게 끌려다니는 것도 문제이지만 자기보호에 매달리느라 상호교류를 하지 못하는 것 역시 문제다.
자아의 과분화 : 방어형/지배형
자아가 과분화된 이들은 기질에 따라 '방어형'과 '지배형'으로 나뉜다. 방어형은 내향성이 강한 사람들로 다른 사람과 가까워지는 것을 피함으로써 지극히 방어적이고 폐쇄적인 관계를 맺고, 지배형은 공격적이면서 외향적인 성향이 높은 사람들로 상대를 굴복시켜서 관계를 지배하려고 한다.
자아의 미분화 : 순응형/돌봄형
자아가 미분화된 유형은 그 기질에 따라 '순응형'과 '돌봄형' 두가지로 나뉜다. 둘 다 관계에서 '하나됨'을 추구하지만 방식은 다르다. 순응형은 상대와 하나가 되기 위해 수동적으로 상대에게 자신을 맞춘다. 자신의 생각, 감정, 욕구 등을 외면하고 상대의 생각, 감정, 욕구를 살핀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주기보다는 상대가 하자는 대로 따르는 식이다. 그에 비해 돌봄형은 적극적이다. 이들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주려고 애쓴다. 문제는 이들이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상대가 실제로 원하는 것을 해주지는 못한다는 데 있다. 이들은 자신이 주는 것을 상대가 그 자체로 좋아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어떤 한 사람이 방어형/지배형/순응형/돌봄형 중 하나에 반드시 속한다고 할 수는 없다. 상황과 대상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바운더리의 재구성
어떻게 해야 바운더리가 건강해질까? 바운더리를 건강하게 다시 세운다는 것은 '나도 존중하고 상대도 존중하는 상호존중의 태도'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을 말한다. 그 핵심은 습관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세가지다.
첫째, 감정과 이성을 연결시키는 것
둘째, 자신의 욕구를 파악하는 것
셋째,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되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
자기표현은 매우 중요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자기표현을 앞세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표현은 상황에 맞게, 특히 중요한 상황에서 하는 것이다. 때로는 침묵하는 것이 가장 현명할 때가 있고,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일 때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자기표현의 네 단계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먼저 자동적인 반응을 멈추고
2. 다음으로 감정과 욕구, 책임을 자각하고
3. 안팎의 상황을 파악하고
4. 마지막으로 솔직하지만 절제된 표현을 하는 것
자기표현의 핵심은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담긴 욕구, 즉 원하는 것을 표현하는데 있다.
솔직하게 말하면, 책의 내용이 새롭거나 기발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내용들을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분석/정리하여 풀어놓은 것 같다. 다만, 책을 통해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좋은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그 상황을, 그리고 나 자신과 상대를 이렇게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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