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돈까스, 카레, 단팥빵, 김밥, 팥빙수, 커피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우리나라의 전통음식이 아니었으나 개화기 이후에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변화를 거쳐 대부분의 한국인이 사랑하는 국민음식이 되었다는 것이다.
평소 음식과 요리에 관심이 많아 책이나 유튜브 등으로 관련 콘텐츠를 자주 접해온 나로서는 일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전혀 모르는 내용보다는 조금 알고 있는 내용에 더 관심이 가게 마련이다. 무엇보다 뒤쪽 표지에 적힌 문구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우리가 먹어온 것이 우리를 만들었다면, 우리의 역사는 불과 백 년 전에 시작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7가지 음식에 미원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아지노모도, 그리고 설탕을 더한 9가지가 이 책에서 다루는 음식이다. (아지노모도와 설탕은 음식이라고 하긴 애매하지만 말이다.)
이 책의 구성은 매우 특별하다. 매 장마다 일제시대인 1920년대를 배경으로, 별세계 잡지사의 류경호 기자가 원래 우리가 먹고 마시지 않았지만 최근 국내로 들어온 음식에 대해 취재하는 내용의 이야기가 단편 소설과 같은 형태로 삽입되어 있다. 역사, 소설, 동화 등 다양한 종류의 책을 쓴 저자의 경험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이런 구성이 해당 음식이 처음 우리나라로 유입되었을 때의 상황을 좀 더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
현재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음식 중 그 유래가 조선시대 또는 그 이전까지 거슬러가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일제 식민지라는 특수했던 시대와 6.25전쟁 이후 먹고살기 힘들던 환경에서 탄생하여 조금씩 변화하면서 지금의 음식이 된 사례가 오히려 많다. 이 책에서 다루는 음식은 모두 개화기 이후 일제시대에 들어온 음식이며, 짜장면과 커피를 제외하면 어떤 형태로든 일본을 거쳐오게 된 것들이다. 초기에 이들 대부분은 비싼 가격으로 인해 서민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고급 음식이었다. 하지만 이후 정부 정책의 영향과 저렴해진 가격으로 서민들에게 가깝게 다가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입맛에 맞게끔 변화하며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처음 국내에 들어왔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한국의 음식이 되어있다.
예전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을 무척 좋아했다. 시즌1 당시 출연진들의 담당은 역사(유시민), 과학(정재승), 문학(김영하), 음식(황교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시민 작가가 잡학박사라고 소개되었으나 거의 역사 부분을 담당했었다.) 역사, 과학, 문학이라는 쟁쟁한 분야와 함께 음식이 끼어있었던 이유는, 그만큼 음식이 우리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고 시대적 상황, 환경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이야기할 거리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음식들의 유래, 변천사 등에 대한 설명이 무척 재미있었다.
조승연 작가가 본인의 유튜브에서 교양(미술, 클래식 음악 등)이란 무엇인지 묻는 구독자의 질문에 '교양은 감성비를 높여준다.'고 대답했다. 이는 동일한 비용의 소비를 통해 더 높은 수준의 감성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말로, 한마디로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음식에 대한 스토리는 그 음식을 먹는 경험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것이 내 생각이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분야의 이야기를 시간가는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었다.
이번 주말에는 짜장면이랑 돈까스를 먹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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