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운동장"이란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한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나는 평소 우리 사회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것에 동의하고 있던 터라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사회는 공정하지 않으며, 우리는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니 제목 밑에 좀 더 작은 글씨로 적힌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라는 문구와 원제인 <The Tyranny Of Merit>이 책의 내용을 더 잘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누구든 개인의 능력에 따라 출세할 수 있다"는 능력주의에는 대체 어떤 문제점이 있을까?
# 능력주의는 옳은가?
이 물음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높은 지위를 얻을 수 있는 능력주의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오히려 능력주의 사회는 과거와 같이 부모의 신분에 따라 자식의 신분이 결정되는 사회보다 훨씬 합리적이고 공평한, 정의로운 사회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이클 센델 교수는 이 책의 전반에 걸쳐 이 능력주의의 결함을 이야기하며 비판한다.
# 능력주의의 문제
능력주의 사회에서 성공을 한 사람들은 "난 그럴만한 능력이 있어서 성공한 거야. 난 내 스스로의 힘으로 이 성공을 성취했기 때문에 이러한 모든 것을 누릴 자격이 있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반대로 실패한 사람들 "난 능력이 없어서 실패한 거야. 이 실패는 온전히 무능한 내 탓이야."라고 자괴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오만에 차 실패한 사람을 업신여기게 되고 실패한 사람은 굴욕과 자괴감, 나아가 자신들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에게 분노를 느끼게 된다.
# 우연과 타고난 행운
능력주의가 옳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누.구.나. 열심히 노력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공에는 노력뿐 아니라 우연과 타고난 행운이 필요하다. 즉, 같은 노력을 해도 누군가는 성공하고 누군가는 성공하지 못할 수 있다.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은 다르다. 이는 개인의 노력과는 무관한 행운이다. 키, 반사신경, 이해력, 암기력, 목소리 등 특정 분야에서 성공하는데 유리한 재능들이 있다. 물론 노력을 통해 이를 향상할 수 있으나 동일한 수준의 노력을 한다면 타고난 재능이 차이를 만들 것이다. 즉, 타고난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다.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와 세계 최고의 팔씨름 선수가 있다고 치자. 두 명 모두 한 분야에서 세계 최고이지만 수입은 축구선수 쪽이 훨씬 높을 것이다. 이는 축구선수가 팔씨름 선수보다 더 노력했고 능력이 뛰어나다기보다, 그저 축구라는 스포츠가 팔씨름보다 더 인기가 많고, 이에 큰 대가를 지불하는 사회를 우연히, 운이 좋게 만난 것뿐이다.
이렇듯 개인의 성공은 순전히 스스로의 힘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배경에는 여러 우연과 행운이 있다.
# 돈과 성공
미국에는 한국의 수능시험에 해당하는 SAT(Scholastic Aptitude Test)가 있다. 그런데 이 SAT 시험은 응시자의 객관적인 지능보다는 집안의 부와 연관성이 높다고 한다. 사실 이에 대한 이유는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부유한 집안에서는 자녀에게 높은 수준의 사설 교육과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집안의 자녀는 걷거나 버스를 타야 하고, 집안일을 도와야 하며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부유한 집안의 자녀는 이러한 모든 어려움에서 자유로운 상태로 공부에 매진할 수 있다. 즉, 돈 앞에서는 시간 마저도 공평하지 않다. 부유할수록 성공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저자는 '이 책은 공동선(Common Good)의 정치를 찾아 나서기 위해 생각을 모아보는 책'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치적인 해결책과는 별개로, 능력주의가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를 각자의 생각이나 행동에 올바른 형태로 반영한다면, 능력주의의 문제점을 조금은 보완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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